글을 오래 쓰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계속 쓰는지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유가 흐릿해진 상태에서 질문만 남는다. 이번 글은 그럼에도 글을 계속 쓰는 이유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예전만큼 설레지도 않고, 눈에 띄는 성과도 없고, 잘 쓴다는 확신도 사라졌을 때 이 질문은 더 자주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쓴다.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고,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쓰게 되는 이유는, 쓰는 행위가 내 삶의 속도와 태도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는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를 유지하는 방식이 됐다.
1. 쓰지 않으면 생각이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질수록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생각 자체였다. 하루를 보내면서 분명 무언가를 느끼고, 고민하고, 판단했을 텐데, 막상 돌아보면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 생각들은 기록되지 않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쓰는 날과 쓰지 않는 날의 차이는 분명했다.
쓰는 날에는 생각이 완벽하지 않아도, 정리되지 않아도, 어딘가에 붙잡혔다. 반면 쓰지 않는 날의 생각은 흘러가 버렸다. 그 차이를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글쓰기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잘 쓰지 못해도 쓴다.
문장이 엉망이어도, 결론이 없어도,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어딘가에 남겨두는 것이다. 글은 완성되지 않아도 되지만, 생각은 기록되어야 했다.
계속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쓰지 않으면 나의 생각이 점점 얇아지고,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흐려지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 전에, 나를 붙잡아 두는 방법이 됐다.
2. 잘 쓰는 날보다 계속 쓰는 날이 나를 만들었다
한동안 나는 잘 쓰는 날을 목표로 글을 썼다.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읽는 사람을 의식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날들. 그런 날의 글은 만족스러웠고, 나 자신을 조금 더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잘 쓰는 날만 기다리다 보면, 대부분의 날은 쓰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는 점점 특별한 일이 되었고, 일상에서 멀어졌다.
전환점은 기준을 바꾼 순간이었다.
잘 쓰는 날이 아니라, 계속 쓰는 날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오늘의 글이 어제보다 나아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어제와 오늘이 이어져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결과보다 태도를 바꿨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앉는 게 아니라, 앉아 있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쓰게 됐다. 그렇게 쌓인 날들이 나를 만들었다. 몇 편의 잘 쓴 글보다, 수많은 평범한 기록들이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다. 이 차이를 받아들인 뒤로 글쓰기는 훨씬 오래 갈 수 있는 일이 됐다.
3. 쓰는 나와 쓰지 않는 나의 차이를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가끔은 일부러 멈춰보기도 했다.
글을 쉬면 오히려 더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았고, 잠시 거리를 두면 다시 의욕이 생길 것 같았다. 실제로 짧은 휴식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쓰는 나보다 쓰지 않는 나는 훨씬 쉽게 흔들렸고, 감정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무언가 불편한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고, 생각이 막연하게 쌓이기만 했다.
반대로 쓰는 나는 달랐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해도, 무엇이 불편한지는 알 수 있었다. 감정이 엉켜 있어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는 보였다. 글쓰기는 해결책을 주지 않았지만, 방향은 알려줬다.
이 차이를 알게 된 이상,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웠다.
계속 쓰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 아니라, 쓰는 쪽의 내가 더 나은 상태라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자주 못 쓰고, 자주 멈춘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그 상태마저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그 기록이 나를 다시 쓰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계속 쓴다.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쓰는 나로 살아가는 편이 조금 더 나답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삶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히 바꾼다.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게 하고, 감정을 외면하지 않게 하며, 스스로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쓴다.
잘 쓰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완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가장 나답게 유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