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막연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 누군가가 떠올렸을 때 “아, 그 사람 글 쓰잖아”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번 글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그래서 글을 썼고, 배우고, 따라 하고, 비교했다.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는 정체성이자 목표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표는 나를 자주 멈추게 했다.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잘 써야 했고, 계속 써야 했고, 의미 있어야 했다. 그 조건들을 만족하지 못하는 날에는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느꼈다. 그렇게 멈춘 날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쓰게 된 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뒤였다. 그때서야 알게 됐다. 내가 원했던 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1. ‘쓰는 사람’이라는 목표가 나를 자주 멈추게 했다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붙어 있었다.
꾸준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고, 보여줄 만해야 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이미 평가 기준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고, 그 기준을 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
특히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에는 그 기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문장이 어색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감정만 남아 있을 때는 ‘이건 글이 아니다’라는 판단부터 들었다. 그렇게 판단이 앞서면 손은 멈췄다. 쓰지 않는 이유는 늘 그럴듯했다. 지금은 컨디션이 안 좋다, 더 생각이 정리되면 쓰자, 나중에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 ‘나중’이 자주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나를 계속 준비 상태에 머물게 했다. 충분히 잘 쓸 수 있을 때, 충분히 정리됐을 때, 충분히 의미 있을 때 쓰겠다는 생각은 결국 쓰지 않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멈춘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멈추고 있었다.
쓰는 사람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에 맞지 않는 오늘의 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자 기준이 바뀌었다
전환은 아주 사소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잘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멈추지만 말자.’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순간부터 글쓰기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글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썼다면, 그 이후에는 연결 여부가 기준이 됐다.
어제 쓴 글과 오늘의 내가 이어져 있는지, 마지막으로 썼던 생각과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는지가 중요해졌다. 문장이 엉망이어도, 결론이 없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완성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멈추지 않는다는 건 매일 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쉬는 날이 있어도 괜찮았고, 쓰기 싫은 날이 있어도 괜찮았다. 다만 ‘이제 안 써도 되지’라는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멈춰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멈추지 않음이었다.
이 기준을 받아들이자 글쓰기는 훨씬 가벼워졌다.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고, 대신 오늘의 나를 그대로 남기면 됐다. 그렇게 쓰인 글들은 눈에 띄게 잘 쓰인 글은 아니었지만, 나를 계속 앞으로 움직이게 했다.
3. 계속 쓰는 사람은 결국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자주 멈춘다.
바쁘고, 지치고, 아무 말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이 많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멈춤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멈췄다는 사실보다,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더 의미를 둔다.
글을 오래 쓰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있다.
늘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번 그만두고도 다시 돌아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완벽한 루틴을 지킨 사람이 아니라, 루틴이 무너져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런 쪽에 가깝다.
며칠, 몇 주를 쉬다가도 어느 날 문득 문장을 적는다. 대단한 글이 아니라 메모에 가까운 문장일 때도 많다. 하지만 그 한 줄이 다시 나를 쓰는 쪽으로 데려온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쓰지 않는 시간이 와도, 나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는 사람. 글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사람.
결국 나에게 글쓰기는 성취가 아니라 태도에 가까웠다.
잘 쓰는 날보다 못 쓰는 날이 더 많아도, 의미 있는 글보다 의미 없는 기록이 쌓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기보다,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계속 쓰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